내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소유 욕구'이다.
소유란 것은 온전히 내 것처럼 여기는 것과 동시에 온전한 통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마치 회계에서 자산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기업에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것이 왜 위험하냐면, 상대를 나와 다른 '객체'로 인식하지 않으면 사소 한 것도 서운해지고 고치려고 하게 된다.
옳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분노와 고집이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소유물이 아니며,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성립할 수 없다.
즉, 나와 다른 객체임을 계속하여 인지하여야만 적정한 거리가 생성되고 평화가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게 혹자는 정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는 결국 스스로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스스로의 평화가 있어야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시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섞여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부모자식 간에도 갈등은 발생한다.
고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부분적으로 공감하고 수용할 수는 있지만 세상에 온전한 이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사람들은 신을 믿거나 수행하며 절대적인 존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천지라고 한탄했다.
사람이 화를 안 낼 수는 없다. 다만 화를 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는 건, 사실 결국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이다. 통제할 수 있다 생각했으나 안 되니 화가 나는 것.
하지만 세상은 처음부터 '나'를 위주로 형성되지 않았고 우린 사회 속 하나의 일원일 뿐이다.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나는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았는데 그 위에 장식되어 있는 전구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이를 인지하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 평화가 찾아온다. 수용할 줄 알게 된다고 할까나.
그리고 번민은 보통 소유욕에서 시작한다. 무소유라는 책이 왜 베스트셀러에 올랐겠는가.
인정하라. 편해진다. 세상 대부분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천지이다.
고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열 내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살자는 게 나의 좌우명이다.
이를테면 운동이라던가 자기 계발이라던가 말이다.
무언인가 갖고 싶은 마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동반된 거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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