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극장판이 대장정의 끝을 마쳤다.
몇년 전 처음 에반게리온을 접했을 때에는, 신지는 너무나 나약하고 답답한 캐릭터로 보였다.
왜저렇게 음울하고 자기 파괴적이지? 생각이 들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신지는 어찌보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지만 파괴할 수 있는것은 자신 뿐이라 외부가 아닌 내부로 침투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포함 어른들은 신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들로 묘사되니까.
이카리 신지는 처음 겨우 중학생의 나이로 나온다.
중2병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떠돌아다닐만큼 질풍노도의 시기인데, 이 아이는 이상하도록 어른스러운 척 한다.
어른스러운 척 하는 것은 이카리 신지 뿐만이 아닌 아스카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보통의 중학생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가
다카포를 제외한 신지또래의 인물들 대부분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
본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결핍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알지만 다소 '주요한'부분이 결핍되어 있는데 바로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10년 전쯤인가, 김윤아님 블로그에서 이런 문구를 보게 되었다. '세상에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오로지 어른의 이기심에 의해 태어난 아이를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 의견에 십분 공감하였고, 다카포를 보면서 또 한번 절감 했다.
사람이 태어나 일명 성장과정이라 일컫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때만큼 어른들의 사상과 관심의 영향을 받는 때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랑의 시작은 '인정'인데, 등장인물 모두 이 인정에 결핍되어 있다.
사실상 진빌런인 이카리겐도 역시 이 인정에 결핍되었던 사람이고, 생에 처음 이를 충족시켜준 여자가 신지의 엄마였던 것이다.
물론 대의를 빙자한 스스로의 이기심을 채우고자 한 행동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카리 신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카리겐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듯 하여 언급해본다.
이처럼 결핍되어 있는 부모 밑에서, 다른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신지는 갈수록 대의명분에 중심을 두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에서.. 내가 이 세계를 구할거야 같은...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는데, 아마 외모도 나이들지 못하는 이카리 신지는 그 미숙함으로 니어 임팩트를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닐까,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주인공이 이카리 신지이니, 신지의 성장 일대기라 혹자는 평할 수 있겠으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편으론 안노 감독의 일대기를 신지라는 캐릭터에 투영하여 성장하여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인 것 같다.
"불완전한 우리이지만 한발짝 나아가 행복해집시다."
버블경제의 붕괴로 일본 사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른들도 살기가 팍팍해져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관심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성장기에 어른들의 관심을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크게 두가지 부류로 성장한다.
1) 의존적이거나 2) 지나치게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처음엔 항상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한 아스카를 보면서 멋있고 아름답다 생각했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각 나이대에 어울리는 면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괜히 아이는 아이 다운 것이 좋다는 말이 나온것이 아닐 것이다.
어렸을때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독립심은 조금 불안정하다. (누군가의)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어. 더 나아가서는 혼자 해결하며 받는 인정은 큰 쾌감을 주며 이 독립적인 성향을 심화한다. 이는 어른스러움과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스카는 사도에 침식되어 내내 안대를 쓴 모습을 하고 나온다. 사도의 저주(?)에 의해 잠들지도 못하고 나이를 먹지 못한다고 나오지만 한편으론 극단적으로 독립적인 아스카의 모습이 어렸을때의 결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로 인해 신지와 함께 본래의 나이를 먹지 못하고 있던 것이고.
그리하야 마지막에 신지와 함께 성장하는 엔딩을 꾸민게 아닌가 싶고..
신지는 대부분의 관람객에서 너무 어리고 겁쟁이고 회피하는 성향이고 등등 오만가지 욕은 다 얻어먹었지만, 이제 서른 둘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느낀건 아직 성장기였던 그 때 적절한 심리 치료나 다카포에서 나온 어른들의 순수한 관심을 받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에바에 타지 않아도 걱정해주고 인정해주는 순수한 관심과 호의.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게 과거일을 두고 가정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압박만이 최선은 아니다.
특히나 방어적인 성향의 아이의 경우는 시간을 두고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게끔 여유를 주어야 하는데 첫화부터 다짜고짜 인사고 나발 에바에 타라니...
약간의 스포를 더 하자면 단행본에서 겐도 이 개쓰레기놈이 실은 신지가 태어나고 유이의 관심을 독차지해서 신지를 질투해 더 못되게 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경우이나, 사랑을 배우지 못했던 이 겐도 개놈은 이를 슬기롭게 풀지 못하고 흥칫뿡 이 사달은 냈던 것이다.
개인적으론 신지의 폭주에는 이놈의 지분이 8할이라 생각된다 ㅗㅗ
여튼 1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완결 시켜준 것은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신지를 비롯한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 부디 행복해지기 바란다. 행복은 완벽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니까.
-끝-
PS. 무엇인가 태클을 걸고 싶으시다면 환영입니다. 전 분석가가 아닌 그저 감상평을 쓴 나부랭이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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