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본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적인 글이오니 전문성을 기대하신 분께서는 뒤로가기 누르셔도 좋습니다.
<서>
1주일도 안 되어서 예술의 전당을 또 방문하였다.
얼마전 칼라치 스트링 콰트렛 공연을 관람하고 얼마 안 있어서 한참전에 예매한 교향악 축제 개막공연을 갔다 온 것이다.
20대 중후반쯤이었나, 교향악 축제를 처음 갔을때 2층 사이드 좌석에 앉았는데 음향이 진짜 개구려서 - 현악기 소리가 웅웅거리고 잘 안 들림 - 이번에는 기필고 최악의 자리는 피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티켓팅 날이 되었지만 1분정도 딴 생각 하느라 1분 늦게 티켓팅을 해서 가까스로 R석 좌석을 예매 했다.
정 중앙은 아니었지만 일단 최악은 면했으니 좋다는 생각에 안심 후 고대했는데 나는 오늘이 정말 아깝지가 않다.
<본 - 1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솔직히 오늘 공연 관람 전 전시회를 두탕이나 뛴 바람에(석파정, 서울 시립미술관) 대단히 고단하고 지친 상태였지만, 난 이제 클덕 꿈나무가 되어 가는걸까 아름다운 선율을 눈 앞에 두고 나는 한눈이라는것을 팔 수 없었다
베토벤의 후기음악 위주로 접해와서 그런지 뭔가 장엄하고 어둡고 이런 이미지를 상상해왔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베토벤의 공식적인 첫 교향곡은 아니지만 역시 초기 작품은 밝고 아름답다. (후기 작품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님)
인간의 삶도 비슷하지 않은가, 무엇이든 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 충만한 삶을 살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충하고 무뎌지는 것을. 여튼 그래서 그런지 한 여름에 이슬비가 내린 후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곡 처럼 느껴졌다.
이것을 극대화 시켜준건 손진수 피아니스트님....................................
아무리 피아니스트마다 표현하는 스타일이나 역량이 다르다고는 하나 진짜 흠잡을 곳 없는 연주였다.
솔직히 유명한 사람을 양성했다는 프레임 갇혀서 무작정 좋다고 판단하지는 않을까 해서 최대한 음악에 집중해서 들었는데 색으로 치면 비비드한 컬러의 앙상블이었다. 어쩜 그렇게 음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청명할 수가 있지??
심금을 울린다 수준이 아니었다. 보석 원석을 숙련된 장인이 하나하나 세공해서 영롱한 빛을 만들어 낸 느낌???
내가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절제된 미 이다.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이런 맥락으로 고음만 빵빵하게 잘 지르는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목소리 크고 고음 잘 내면 엄청난 가수라고 칭송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많이 있다.
고음을 빵빵하게 지르는 것이 테크닉이라고 하면, 이를 잘 다듬어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예술성이 아닌가 싶다. 그런 맥락에서 마냥 테크니컬한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 필요 없을정도로 완벽하고 생동감 넘치는 연주였다...
요즘말로 육각형에 가까운 연주였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앵콜까지 해주심 ㅠㅠㅠㅠ
2악장 오보에 연주 진짜 너무너무 좋았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나 현악기, 피아노만 팠다면 관악기도 덕질하고 싶어졌엉 ㅠㅠㅠ
<본 - 2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1번>
말러... 늘 항상 가까이 지내고 싶었지만 엄청난 러닝타임 덕분에 늘 영상을 다 듣기도 전에 잠들었던 기억이 많다
그래서 혹여라도 이번에도 졸게 되는건 아닐까 정말 걱정을 하였는데 그건 나의 착각
막상 오늘 전체를 들어보니 대체 어떻게 잠든건가 싶은 기분이랄까??? 이렇게 심벌즈와 관악기가 난리 치는데 이걸 잤다고?? 느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굉장히 긴 곡이다. 1시간은 걸리는 곡이고, 거인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요동치는 듯한 파트가 부분부분 나온다. 처음에는 고요한 숲속에 있는 거인이 일어난 느낌이라면, 곡이 진행될수록 거인을 오해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다툼이 생겼다가 오해를 풀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결국 너네 다 내손에 혼났다 같은(실제 해석은 어떨지 모르겠음)
생전에 말러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고 얘기 했었다는데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듯한 전개였다.
네.. 선생님... 지금은 당신의 세상입니다.. 오늘 광주시향의 개쩐 연주 덕에 당신의 개쩌는 능력이 멀리멀리 퍼져나갈거예요...
여튼 금관악기 분들이 연주 중간에 들어온것도 신기했고 플룻 부는 분들이 작은 피리같은... 피콜로인가? 번갈아서 연주하는 것도 신기했음
역시 지휘자 출신 작곡가셔서 그런지 관객을 주무르는 구성이 와 진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이쯤이면 딴 생각 날 것 같은 타이밍인데.. 하는 찰나에 금관악기가 크게 소리내고, 심벌즈가 친다.
지금 조는 사람들 다 일어나 같은 ㅋㅋㅋㅋ
진짜 실제로 봤던 연주중에 악기편성이 제일 많았다. 나는 1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솔직히 감동해서 눈물났음 ㅠㅠㅠㅠ 그 서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연주 끝나고 아주 콘서트홀이 난리가 났다. 그렇게 기립박수 많았던 공연을 본 적이 없다.
3년전인가 4년전인가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 지금도 주가가 엄청난 피아니스트 조성진분이 협연을 했는데, 그날 연주도 그렇게 일어나서 사람들이 박수 치진 않았었다
물론 그날도 기립박수 치는분들도 있었는데 오늘처럼 내 시야가 가릴정도로 합창석이고 1층이고 다들 일어나서 난리가 났던 경험은 없어서...
그래서 든 생각이 내가 몰랐던 사이 광주시향은 엄청난 존재가 되었고, 말러님...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의 시대가 왔습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자분이 쇼맨쉽도 좋으시고 직관적인 지휘를 하셔서 관객석에서도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었다
거인이 끝내 정복 했던 것 처럼, 당신의 음악이 세상을 정복할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 .진짜 광주시향 연주도 너무 좋았고 프로그램 선정 쩔었다 진짜..... 또또또또또또또또또또 연주해주세요!! 네?? ㅠㅠㅠㅠ
PS.
나는 오늘 2시간이 훌쩍 지나갈정도로 개쩌는 연주를 들었지만... 초대권이 많이 뿌려진건지 관객 매너가 쵸큼.. 아쉬웠... 다... 대체 왜 내 주변은 이따위였나... 아니 며칠전에 관람했던 칼라치 스트링 콰트렛은 흠잡을 곳 없이 관객매너 개쩔었는데 아니 왜.............
1) 일단 기침의 전당답게 연주중에 기침소리는 기본이었고, 아니 왜 고요해질때 우후죽순으로 기침이 나오죠..? 눈감고 집중할라 하면 기침 지뢰밭이 터져버렸음. 한사람이 기침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다른 곳에서도 기침이 터짐. 무슨 크레이지 기침 아케이드인줄.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면 확률적으로 기관지가 안 좋은 사람들도 많기 쉽다고 하나, 다년간의 경험 결과를 보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콘서트홀 공기순환 문제인 것 같다. 진짜.... 다음 공연에도 이러면 계속 기침의 전당이러고 놀릴거임.
2) 잘못걸린 음유시인
좋은 좌석이 별로 없어서 겨우겨우 예매 했건만... 내 주변에는 음유시인이 계셨다... 연주하는 내내 뭘 그렇게 흥얼거리시는지... 흥이 많으신건 알겠으나 매너좀 지켜주십쇼... 기침하시는 분들은 그 순간이지만 이런 음유시인분들 만나면 연주 끝날때까지 들어야 한다. 아주 콧노래로 솔로 파트 잡으신줄.
<결>
나날이 교향악 축제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이건 진짜다. 노다메 칸타빌레 보면 슈트레제만이 이런 말을 한다. 매 연주마다 최고의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음 연주에는 그 최고의 연주를 넘어서기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진정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다고.
처음에는 그 말이 실현 가능한건가 싶었는데, 진짜 놀랍다. 매년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연주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또 오늘 이 귀한 연주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살아갈 이유를 다시금 깨닫는다. 사랑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예술도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오늘 연주로 지긋지긋한 일상을 기꺼이 열심히 해쳐나갈 에너지를 얻었다. 연주하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 음악은 오늘 나를 구했고, 살아난 나는 이 에너지로 누군가를 또 구하겠지. 정말 귀한 연주였습니다. 감사했어요. 그 자리에서 열심히 묵묵히 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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